◈ 3:1-4 범죄한 통치자들: 우두머리들이 정의를 모른다면?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는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다.
선이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6:8).
아모스 5:15 역시 ‘성문’(재판이 행해지던 장소)에서 공의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자들이 책임을 무시하면 백성은 권리와 인격을 빼앗기게 된다.
▣ 3:5-8 당시에 "평화의 선지자들"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먹을 것을 보장해주면 ‘평화’를 외쳤다. 결국 그들에게 밤이 온다.
경제적인 이해 관계로 움직이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반면, 여호와의 영(성령)이 주시는 능력/정의/용기가 충만한 사람은 ‘허물과 죄’를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까? 좋은 결과만 바라고 과정(회개, 죄, 벌 등)은 건너
뛰려고 한다.
왜 이런 반대에도 선포하게 하실까? 하나님에게는 ‘내 백성’이니까.
◈ 3:9-12 타락한 지도자들이 시온을 멸망으로 이끈다.
ㆍ우두머리: 뇌물을 위해 재판한다.
ㆍ제사장: 삯을 위해 교훈한다.
ㆍ선지자: 돈을 위해 점을 친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들 편에 계셔서 재앙이 자신들에게 임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성전까지도 멸망의 대상이다.
미가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에,예레미야가 다시 성전의 멸망을 외친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그러나...
▣ 4:1-5 시온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사야 2:2-4의 내용과 같다. 전적으로 여호와께서 이루실 ‘평화’에 달려 있다.
먼 미래의 일이다. 심판 이후에는 회복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모든 사람을 위한 예배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문자적, 지리적인 예루살렘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다. 특히 성전은 더 그렇다. 우리들 자신이 성전이다.
바벨에서 갈라졌던 민족들이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함께 여호와를 경배한다.
◈ 4:6-8 "남은 자들"의 회복과 여호와의 통치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을 받은 자. 이런 사람들이 남은 백성, 남은 자가 된다.
야곱, 다윗, 바벨론 포로들이 떠오른다. 현재는 악의 시간이지만 미래에는 소망이 있다.
이것이 ‘정신 승리’가 아닌 이유는 미래를 이야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4:9-10 고난에서 구원으로!
구원이라는 단어는 미가서에 딱 한 번 등장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고난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일어날 수 없다고 전했다. 번영 신학!
원수가 침입하는 상황에서 왕이나 모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바벨론’에서 구원을 얻게 하신다. 발상의 전환이다. 예레미야도 바벨론 포로들에게
편지를 썼다(예레미야 29:1-14). 동시에 애굽으로 향하려는 계획은 헛되다고 말한다
(예레미야 42:7-22).
◈ 4:11-13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이방 나라들의 오해
시온이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리는 때가 언제 올까? 전리품을 여호와께 드리는 승리의
시간이 다시 올까? 역사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린도후서 10:3-6이 우리에게 답을 준다.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일은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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