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성경 공부 238강 : 소선지서로 만나는 하나님 (32) 말라기_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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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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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번째 논쟁(2:17-3:6): "정의의 하나님은 없다는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했다."
현실에서 악을 행해도 아무런 일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선지자에게 반문한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2:17)
레위 자손 제사장들은 ‘우리가 제사드리는 성전에 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 날은 제사장들의 점 치는 일, 간음, 거짓 맹세,
부당한 품꾼의 삯, 고아와 과부에 대한 압제 등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데 대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3:5).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악을 미워하시고 정의를 사랑하신다(feat. 시편 45:7).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소멸’이 아니다. 깨끗한 제사장들에 의해 공의로운 제물이
드려지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그래야 한다.
◈ 다섯번째 논쟁(3:7-12):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죄의 용서 이전에 반드시 회개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십일조’가 아니라 ‘회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3:7)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3:7)
말라기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한 ‘십일조와 봉헌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중단했는가?
하나님을 더 이상 기쁨으로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 백성들의 태도가
중단된 ‘십일조와 봉헌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아니하나 보라."는 말씀은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예배에 소홀한 것, 교회의 활동과 사명을 세상에서 다하지 않는 것, 헌금을 인색하게
드리는 것, 관심과 충성심이 부족한 것 등은 모두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도둑질 하는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 여섯번째 논쟁(3:13-18): "너희는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였다."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
그 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아무 ‘유익’(3:14 직역: 돈벌이)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교만한 자,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잘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3:13)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이름을 ‘기념책’에 기록하신다(3:16).
다 섞여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옳고 그름,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는 분이시다.
◈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4:1-6)
하나님의 공의는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악은 패배할 것이다.
‘그 날’은 마치 용광로처럼 교만한 사람과 악을 행한 사람을 태운다.
그러나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에게는 태우는 불이 아니라 ‘치료하는 광선’이 주어진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에도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라는 표현이 나온다.
말라기는 시간을 거슬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시작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 때 하나님은 지켜야 할 율례와 법도를 통해 약속을 주셨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보내실 ‘선지자 엘리야’는 하나님과 백성을 화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화해의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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