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배경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우상 숭배가 심각해졌다. 그리스와 바벨론의 다신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방 신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였다.
이러한 상황은 아들 르호보암 때 더욱 심각해졌다.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 이스라엘이
세워졌을 때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딜레마가 발생했다.
이에 여로보암은 바알 신전을 재건축하고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바알 숭배는 백 년 이상 지속되다가 예후 시대에 가서야 중단되었지만 예후조차도 벧엘 신전은 없애지 못했다. 5대에 걸친 예후 왕조 기간 동안 경제적인 성공과 활발한 상업거래가 일어났으나 북이스라엘은 ‘불평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부wealth는 계속 쌓았지만 사회적, 도덕적으로는 타락하고 있었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출애굽 사건을 부인하기 시작했고(군사적, 정치적 힘으로 애굽을
탈출했다고 역사를 왜곡) 바로 이런 시기에 선지자 아모스가 등장했다.
아모스는 성경에 예언이 기록된 첫 번째 선지자이다.
◈ 아모스의 생애
아모스는 호세아보다는 10년, 미가보다는 20년 빠른 시기에 활동했다.
북 이스라엘의 국력이 최고점에 있을 때 재앙을 예언했다.
‘수고하는; 무거운 짐을 진’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아모스가 예언한 재앙은 크게 두 가지다.
2년 후에 발생할 예루살렘 지진과 유다 왕 웃시야가 쓰러져 나병에 걸려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베들레헴 옆 유대 광야의 드고아)이면서도 북이스라엘에서
예언했다. 북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블레셋과 모압을 물리친 성공의 시기에 한 남유다 출신
시골 농부가 사회 전체를 비판하는 모양새였다.
아모스는 비판 대상도 퍽 다양했다.
a. 부유한 사람들, 군인들, 학자들과 종교계 b. 신앙, 제사, 절기
c. 사람들의 일상 생활(도덕과 신앙) d. 여로보암 2세(출애굽과 정의를 기억하라고 요구)
아모스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비판하기 전에 주변 6개국 (다메섹, 가사, 두로,에돔, 암몬, 모압) 을 먼저 비판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이 결코 지역 신local god이 아님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비판의 내용은
a.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모습(하나님을 믿음/언약을 지켜 순종함/ 이웃을 사랑함)을 제시하고 돈이 사회를 지배하지 않게 하라는 요구
b. 가난한 자들을 존중하고 사회와 정치에서도 믿음과 사랑을 보이라는 요구
c. 모세의 중재로 시내 광야에서 시작된 하나님과의 대면은 중단된지 500년이나 지났지만 이제 하나님을 다시 만날 준비를 하라는 요구였다.
이제 언약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을 둘러싼 여섯 나라에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했다.
1: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들은 삶이 달라진다. 아모스가 예언했던 시대는 평화와 안정과 발전의 시기였을까 아니면 혼란과 위기와 전쟁의 시기였을까? 전자라면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후자라면 선지자가 등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아모스는 끊임없이 제사장 아마샤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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