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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성경 공부 255강 : 신구약 중간사 (17) – 유대교 세 분파: 광야 이야기


▣ "에세네파"에게 광야는 신앙의 정통성을 보존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장소였다.

그런데 B.C. 63년에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고 하스몬 왕조가 끝이 나면서

광야로 향한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B.C. 67년, 하스몬 왕조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사망하자

대제사장 역할을 맡고 있었던 맏아들 힐카누스 2세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2세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두고 내전이 벌어졌다. 이 때 힐카누스 2세는 로마에게 내전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두매 출신의 행정가 "안티파테르"가 이 일을 중재했다.

이 요청을 빌미로,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3개월만에 함락시켰고, 지성소까지 침범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1만 2천여 명이 학살당했다.

유대는 "시리아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고, 로마는 안티파테르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안티파테르의 아들이 바로 "헤롯 대왕"(마태복음 2:1-18)이다.


▣ 로마는 속국으로 전락한 유대에게 종교의 자유와 산헤드린의 자치권을 주었지만,

정치적인 독립과 회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다시 광야로 향했다.

로마의 눈에 이들은 강도와 반란군이었다.

갈릴리 사람 유다(사도행전 5:37에 등장하는 인물로 A.D. 6년, 로마의 세금 정책에 반대해서 반란을 주도함), 셀롯인Zealot(열심당)시몬(누가복음 6:15)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적(표적)을 구하면서 "그 선지자"를 기다렸다.

그들이 꿈꾼 "회복"은 로마로부터의 독립이었다(요한복음 6:14-15).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에게서 떠나 산으로 가셨다.


◈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에세네파"로 보았다.

그들에게 예수님은누구였을까? (마태복음 16:13-20)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에세네파,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초대교회는

모두 자신들을 "그 공동체, 그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광야에 머물지 않았지만, 초대교회가 선택한 길 역시 권력이나 제도와는

거리가 먼 "광야"의 길이었다.

우리의 모임은 "광야"를 닮아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A.D. 66-73년에 제 1차 유대-로마 전쟁이 벌어졌고,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다. "성전 중심"의 유대교가 "랍비 중심"의 유대교, 다른 말로 하면 율법 중심의

유대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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