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성경 공부 255강 : 신구약 중간사 (17) – 유대교 세 분파: 광야 이야기
- gosimon0422a
- Jan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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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네파"에게 광야는 신앙의 정통성을 보존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장소였다.
그런데 B.C. 63년에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고 하스몬 왕조가 끝이 나면서
광야로 향한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 B.C. 67년, 하스몬 왕조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사망하자
대제사장 역할을 맡고 있었던 맏아들 힐카누스 2세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2세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두고 내전이 벌어졌다. 이 때 힐카누스 2세는 로마에게 내전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두매 출신의 행정가 "안티파테르"가 이 일을 중재했다.
이 요청을 빌미로,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3개월만에 함락시켰고, 지성소까지 침범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1만 2천여 명이 학살당했다.
유대는 "시리아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고, 로마는 안티파테르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안티파테르의 아들이 바로 "헤롯 대왕"(마태복음 2:1-18)이다.
▣ 로마는 속국으로 전락한 유대에게 종교의 자유와 산헤드린의 자치권을 주었지만,
정치적인 독립과 회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다시 광야로 향했다.
로마의 눈에 이들은 강도와 반란군이었다.
갈릴리 사람 유다(사도행전 5:37에 등장하는 인물로 A.D. 6년, 로마의 세금 정책에 반대해서 반란을 주도함), 셀롯인Zealot(열심당)시몬(누가복음 6:15)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기적(표적)을 구하면서 "그 선지자"를 기다렸다.
그들이 꿈꾼 "회복"은 로마로부터의 독립이었다(요한복음 6:14-15).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에게서 떠나 산으로 가셨다.
◈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에세네파"로 보았다.
그들에게 예수님은누구였을까? (마태복음 16:13-20)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에세네파,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초대교회는
모두 자신들을 "그 공동체, 그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광야에 머물지 않았지만, 초대교회가 선택한 길 역시 권력이나 제도와는
거리가 먼 "광야"의 길이었다.
우리의 모임은 "광야"를 닮아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 A.D. 66-73년에 제 1차 유대-로마 전쟁이 벌어졌고,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다. "성전 중심"의 유대교가 "랍비 중심"의 유대교, 다른 말로 하면 율법 중심의
유대교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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