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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공부 자료방


목요 성경 공부 258강 : 신구약 중간사 (20) – 유대교 세 분파: 바리새파
▣ "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라고 바리새인들이 물었다( 마태복음 22:17 ).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 바리새파가 예수님의 대답을 어떻게 ‘ 해석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 마카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셀레우코스 왕조가 아론 계열의 알키모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웠을 때, " 그 하시딤 "이 이를 수용했다. 바리새파는 이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광야로 간 하시딤은 에세네파가 되었고, 중재안을 수용한 하시딤은 바리새파가 되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 서기관 ’으로서 율법을 연구하고 보존, 교육하는 일을 담당했다. ▣ 헤롯 대왕의 통치 기간이 바리새파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헤롯은 친로마 성향의 권력자였고, 헬레니즘 문화의 전도자였기 때문이었다. 바리새파와는 사사건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헤롯의 아들들


목요 성경 공부 257강 : 신구약 중간사 (19) – 유대교 세 분파: 사두개파 (2)
▣ 유대교 세 분파 비교 ◈ 사두개인들의 관심사와 신앙의 특징 ① 권력, 부,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았다. ② 그리스어(헬라어)를 주로 사용했다. 권력자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자녀들 역시 회당에 보내지 않고 *김나지움에서 교육 받게 했다. ③ 율법에 기록된 것만 인정했다. 근본주의 신앙과 닮아 있다. 문자주의자들이기도 하다. ④ 권력을 좇는 그들의 습성상 사대주의자로 인식되었고, 민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바리새파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고 그들은 민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노력했다. ▣ 요한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 장소로 나아온 것( 마태복음 3:7 )과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한 것( 요한복음 11:47-53 )이 대표적으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두 장면이었다. 거기에 " 민중의 뜻 "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바리새파가 중요시한 ‘ 전통 ’은 율법에 대한 ‘ 해석


목요 성경 공부 256강 : 신구약 중간사 (18) – 유대교 세 분파: 사두개파
◈ " 사두개파 "는 자신들의 이름을 제사장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의미로 ‘ 사독 ’에서 따왔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직후, 공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이 사도행전 22:30-23:10 에 나온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사두개인들은 ‘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믿는 ’ 아주 현세적인 사람들로 나온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복 역시 ‘ 오직 이 땅의 번영으로 증명된다. ’고 주장했다. ▣ 권력자가 대제사장을 임명하거나 아예 대제사장이 공석으로 방치되었던 기간에 사두개인들은 권력자(당시에는 하스몬 왕조)의 주변을 맴돌았다.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강제로 그들에게 할례를 행했던 *요한 힐카누스 때 발행한 동전에는 ‘ 대제사장 요한 힐카누스와 유대인의 원로회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의 원로들이 바로 요한 힐카누스가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하는 것을 승인한 종교 엘리트 계층, 사두개파이다. 하스몬 가문은 사독 계열


목요 성경 공부 255강 : 신구약 중간사 (17) – 유대교 세 분파: 광야 이야기
▣ " 에세네파 "에게 광야는 신앙의 정통성을 보존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장소였다. 그런데 B.C. 63년 에 로마가 유대를 점령하고 하스몬 왕조가 끝이 나면서 광야로 향한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 B.C. 67년 , 하스몬 왕조의 유일한 여왕이었던 " 살로메 알렉산드라 "가 사망하자 대제사장 역할을 맡고 있었던 맏아들 힐카누스 2세 와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2세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두고 내전이 벌어졌다. 이 때 힐카누스 2세는 로마에게 내전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두매 출신의 행정가 " 안티파테르 "가 이 일을 중재했다. 이 요청을 빌미로,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3개월만에 함락시켰고, 지성소까지 침범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1만 2천여 명이 학살당했다. 유대는 " 시리아 행정구역 "으로 편입되었고, 로마는 안티파테르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안티파테르의 아들이 바로 " 헤롯 대왕 "( 마태복음 2:1


목요 성경 공부 254강 : 신구약 중간사 (16) – 유대교 세 분파: 에세네파
▣ " 에세네파 "는 다니엘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세 번째 제국인 헬라 제국이 멸망하고, 네 번째 제국인 로마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제 다니엘에게 주셨던 *예언이 곧 성취될 거라고 생각할만한 상황이었다. ◈ 에세네파 이전부터 유대인들 중 일부는 다니엘 9:24~27 " 칠십 이레의 예언 "을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이 다시 세워진 때부터 ‘ 칠십 년이 일곱 번 ’ 지나면 종말과 최후 심판이 있고 메시야가 올 거라고 해석해 왔다. 에세네파의 예상대로라면 ‘ 손대지 아니한 돌 ’( 다니엘 2:45 )이 네 번째 제국 로마를 부서뜨리는 사건이 이제 곧 이루어져야 했다. 에세네파는 종말의 심판을 믿었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며, 천사들과 함께 하늘의 예배에 참여해야 구원을 받을 수 았다고 가르쳤다. 누군가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세례 요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 에세네파의 가르침 ①


목요 성경 공부 253강 : 신구약 중간사 (15) – 유대교 세 분파의 출발
▣ " 에세네파, 사두개파, 바리새파 "의 공통 분모는 ‘ 제 2성전과 율법 ’이었다. 제 2성전이 지어진 이후에야 ‘ 유대교 ’라는 이름이 등장했고, 마카비 전쟁 직후 대제사장 직분이 변질되자 이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분파들이 등장했다. 정통성의 회복을 요구한 ‘ 하시딤 ’들이 ‘ 의의 교사 ’라는 이름의 사독 계열 제사장을 중심으로 광야로 향했고 " 에세네파 "를 형성했다. 반면, 하스몬 왕조 권력의 주변에 남은 제사장들과 종교 엘리트들은 " 사두개파 " 를 형성했다. 분파의 이름에서 정통성을 주장하려는 그들의 의도가 확인된다. 신약 시대에 이들은 ‘ 산헤드린 공회 ’의 구성원이었으며 정치적인 영향력을 추구했다. ◈ ‘ 불의함으로부터 정결하게 구별됨 ’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 바리새파 "는 처음부터 민중들의 지지를 목표로 삼았다. 안티오코스 4세가 죽은 뒤,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위를 놓고 데메트리우스(데메드리오)와 알렉산더 발라스가 대결했을 때


목요 성경 공부 252강 : 신구약 중간사 (14) – 사마리아인 이야기 (2)
▣ " 네 번째 제국 "인 헬라의 안티오코스 4세가 헬레니즘을 강요했을 때, 유대의 ‘ 하시딤 ’이나 사독 계열은 강하게 저항했던 반면에, 사마리아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심 산의 성전을 제우스 신에게 봉헌했다. 당시 사마리아는 그리심 산이 있는 세겜을 수도로 삼았었다. □ 요한복음 4:3-26 (20절의 ‘ 그 산 ’이 바로 그리심 산이다.) 바사 제국 시대부터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을 히브리인, 혹은 ‘ 시돈인 ’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대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 " 하스몬 왕조 시대 "( B.C.142~63년 )에 요한 힐카누스는 사마리아 지역을 점령하고 강제로 할례를 시행했다.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사마리아인들의 거주를 허락했다. ‘ 강제적인 유대화 ’가 사마리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혐오했고,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에게 분노했다. 이런 관계가 신약 시대까지 이어졌다. 예수님은 ‘ 유대인들의 예배 ’


목요 성경 공부 251강 : 신구약 중간사 (13) – 사마리아인 이야기 (1)
▣ 다윗 왕조의 멸망( B.C.586년 )부터 하스몬 왕조의 설립( B.C.142년 )까지의 역사는 남유다만을 다루고 있고 북이스라엘은 제외되어 있다. 사라진 북이스라엘의 중심에 ‘ 사마리아인 ’이 있었다. ◈ " 최초의 제국 "이라고 할 수 있는 앗수르는 B.C.722년 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 성전을 약탈했다. 당시에 이미 바알, 아세라 등의 우상 신상들이 사마리아 성전 안에 있었다. 요셉 지파를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때부터 예루살렘과 구별된 자신들만의 예배 장소를 원했다. 처음에는 벧엘에 ‘ 금송아지 ’를 두고 산당과 제사장을 세웠고, *오므리 왕조(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까지)가 시돈과 혼인 동맹을 맺은 후에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고 거기에 성전을 세웠다. ▣ 성경에 등장하는 앗수르의 왕들 ① 불Pul(디글랏 빌레셀): 남유다의 아하스(히스기야의 아버지)와 북이스라엘의 호


목요 성경 공부 250강 : 신구약 중간사 (12) – 독립: 하스몬 왕조
▣ B.C.142년 맛다디아의 둘째 아들 ‘ 시몬 ’이 독립을 쟁취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444년이 흐른 뒤였다. 시몬은 스스로 왕과 제사장 을 겸했다. 더이상 놀랍지가 않다!! 마카비 전쟁 초기에는 하스몬 가문에 협조하던 ‘ 하시딤 ’(경건한 유대인들)과 사독 계열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완전한 독립에 앞서 B.C.164년 에는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고 ‘ 수전절 ’(히. 하누카)을 지켰다. □ 요한복음 10:22 하스몬 왕조는 B.C.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80년간 이어졌다. ◈ 「이월 이십삼일에 유다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 소리도 드높게 비파와 꽹가리와 거문고 소리에 맞춰 찬미와 노래를 부르면서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민족의 큰 적이 참패를 당하고 이스라엘 땅 밖으로 쫓겨간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시몬이 제사장직의 정통성을 무너뜨렸지만, 독립을 경험하게 된 유


목요 성경 공부 249강 : 신구약 중간사 (11) – 저항: 마카비 전쟁 (2)
▣ 제 2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진 B.C.516년 이후에 ‘ 대제사장 ’을 어느 집안에서 맡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독 계열의 오니아스 집안. 한편, B.C.200년 부터 헬레니즘화가 강화되면서 예루살렘은 중요한 상업 도시가 되었다. ‘ 세금+무역권 ’을 어느 집안이 담당할 것인가? 토비아스(도비야) 가문이 유력했다. 도비야는 에스라ㆍ느헤미야 시대에 유대 공동체를 방해한 인물로 그의 후손들이 유대 공동체의 경제권을 장악했다. □ 느헤미야 4:1-6; 13:1-9 ◈ 헬라 제국의 지배 세력이 바뀌는 동안에도 내부적으로는 두 집안의 경쟁이 치열했다.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는 친프톨레마이오스였고 토비아스 집안은 친셀레우코스였다. B.C.200년 이 되자, 오니아스 3세의 동생 ‘ 야손 ’이 셀레우코스 왕조에 뇌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이 되었다. 예루살렘에 그리스식 극장, 경기장, *김나지움(훈련장)이 세워졌다. 헬라 제국은 예루살렘을 아테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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