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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경공부: 고린도전서 21강


[예배] 4.1. 예배를 인도하는 남자와 여자: 예언하는 자와 단정한 복장 (11:2-16)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고린도전서의 문예-문화적 연구] by Kenneth E. Bailey (1930~2016)

번째 논문 (4:17-7:40)에서 [성: 가정에서의 남자와 여자]를 다루었었고 이제 번째 논문(11:2-14:40)에서 [예배: 교회에서의 남자와 여자]( esp. 리더와 예배자로서의) 를 다룸.

11:2 전통에 대한 언급. 다섯 개의 논문을 시작하는 방식. 곧이어 11:17-22에서는 잘못을 지적.

당근과 채찍? ‘전하여 준 대로’라는 말은 바울도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하고 받는 것은 공동체의 거룩한 전통을 이전시키는 방식. 11:23에서는 주의 만찬을, 15:3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 방식으로 전함. cf. 신명기 5:31


Q. "신약 성경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가?" 교회가 지난 역사 속에서 보여 준 전통적인 해석: 1) 여자는 남자의 권위 아래 살아야 한다. 2) 여자는 공적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3) 여자는 남자를 섬기도록 창조되었다.


높이뛰기 형식: 전력질주(11:3)-도약-Bar를 넘음(11:10)-반대쪽으로 착지 11:3의 전력질주에는 신학적 원리(그리스도의 ‘머리’origin가 하나님이라는)가 나타난다.

11:10의 Bar를 넘어 가는 부분에서는 클라이맥스(첫 번째 창조 때 하나님을 찬송했던 천사들을 위해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머리에 두라는)가 나타난다.

상황: 고린도교회에는 남성과 여성 예언자들이 있었다(예언은 은사를 주신 결과). 남성과 여성이 모두 예배 인도자로서 기도(개인적/공개적)하고 예언(공개적)했다. 10:23에서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이 합법적이다."라는 원리를 "여자는 예배드리는 교인 앞에서 예언할 때 머리를 가릴 필요가 없다."라고 이해한 여성 예언자들은 "나는 내 권리를 원한다!"면서 권리를 행사했다.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유대교 배경 교인에게는 여자가 공식 석상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이 전통. 헬라 배경 교인에게는 공식 석상에서 머리를 가리지 않은 신전 창녀(헤.타이라)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바울은 "예언하는 사람들(예배 인도자들)의 복장 문제"를 말할 필요를 느꼈다.

공적인 예배에서 남성과 여성은 똑같은 리더십을 가진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에게는 머리를 가리거나 가리지 않는 성의 구별이 있다. 머리를 드러내는 방식은 교회의 예배 회중 안에 있는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예배를 인도하는 예언자가 여성일 경우 더 특별한 책임이 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므로 사람들이 듣고 기억하기를 바란다면 예언할 때 머리를 가리라는 것이 바울의 명령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교인은 "그녀"에게 집중할 것이다.


머리: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시작beginning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의 원천은 그리스도다." "여자의 원천은 남자다." (창 2:21-23로부터) "그리스도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똑같은 해석이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원천)이다." (시 111:10)에도 적용된다.


창조 이야기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 남자가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에 여자보다 더 중요하다.

11:7 남자: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 여자: 남자의 (‘형상과’를 쓰지 않음) 영광 왜냐하면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창 1:26-27).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았을 때 남자(사람)의 영광이 나타난다. 예배자는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에 주목하게 된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은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여자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11:9-11 그리스어 전치사 dia- : [~를 위해서, 혹은 ~ 때문에] 로 해석될 수 있다. 번역 하나가 여성의 지위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해석: ① 하나님은 남자를 위해서(남자를 섬기게 할 목적으로) 여자를 창조하셨다. ② 여자는 도움이 필요한 남자 때문에 지음을 받았다.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하와는 ‘돕는 (자로서의) 배필’(창 2:18)로 창조되었다. Ezer: 에벤Ezer이나 엘리Ezer 처럼 구약에서 15/19번이나 ‘하나님의 도움/구원’을 말할 때 사용됨. 강함과 능력이 돕는 자의 특징. 그런데 그런 돕는 자가 어디에서 나오는가? 강한 자의 모습이나 능력자의 모습이 아니라 곤경에 빠진 남자의 뼈와 에서 취해진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그림자? 바울은 새 언약 아래에서 남자와 여자의 평등성과 상호의존성(11:11)을 담대하게 주장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상호 의존 관계는 결혼(7:2-5)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함께 사는 일에 확대된다.

11:10 이러므로: 여자는 홀로 애쓰는 남자를 돕기/구원하기 위해 지음 받았으므로. 자기 머리에 권위(머리를 가림으로)를 두지 않으면 자기가 구원자가 되어 버린다. 창조를 찬양했던 천사들이 이제 교회를 보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대해 찬양하게 하기 위함.

중앙의 클라이맥스는 예배에서 여성의 리더십을 확언하고 여성에게 권위의 표지를 부여한다.

교회를 통한 새 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평등성상호 의존성 회복했다.

결론: 우리는 우리가 속한 문화적 배경에 민감해야 한다. 교회에서 조화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새로운 자유를 누리는 법의 핵심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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