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1. 메시지와 믿음의 타당성 (15:1-20)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고린도전서의 문예-문화적 연구] by Kenneth E. Bailey (1930~2016)
▣ 1:10-4:16의 내용은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15:1-58은 그 십자가의 결과인 [부활]을 이야기한다. 십자가와 부활 주제와 함께
"사도들이 동일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내용이 두 논문의 연결고리이다.
다섯 번째 논문의 첫 부분(15:1-20)에서 부활이 주는 메시지와 부활과 믿음의 타당성validity이 제시된다. 두 개의 설교로 구성: 부활의 메시지(15:1-11), 부활과 믿음의 타당성(15:12-20)
▣ 부활이 주는 메시지 (15:1-11) 바울은 이 마지막 논문(15:1-58) 역시 전통*을 기억나게 하면서 시작한다.
이 전통은 고리 모양의 구성 한가운데에 긴 클라이맥스(15:3b-9)로 자리를 잡는다.
이 설교 안에는 네 개의 초기 기독교 신조*creeds와 예수를 따르는 자들People walking in "the way"이 부활의 증인이라는 사실이 들어 있다.
사도신경은 4-5세기에 형성. 누가 만들었을까? 기독교의 신조들은 그보다 이전에.
15:1 "너희에게 내가 전한 것. 너희가 받은 것이고 그 가운데 선 것." 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15:3)
초기 기독교의 신조들은 바울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만들었을까?
시편 8:2과 마태복음 21:16이 단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
15:5 단계 평행법을 사용. 게바: 열두 제자들: 오백여 형제 = 야고보: 모든 사도들: ? "많은 사람들"이 기대되는 곳에 조산아preterm baby인 바울이 제시된다. 왜 그랬을까?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 바울과 베드로와의 관계(갈라디아서 2:11-14)를 생각한다면 게바를 먼저 기록한 것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다. 또 자신은 사도가 되기에 적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소개.
▣ 바울은 구원을 과거, 현재, 미래의 일로 보았다. 15:2에서는 현재에 "구원 받는다. "라고 말한다. 제자는 "그 길"the way을 매일 가야 하고 구원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룬다(빌립보서 2:12). 바울을 지금의 바울로 만든 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소속감이나
율법적인 흠 없음이 아니라 바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15:10)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비어 있는; 주인 없는) 않았다. 헛된 믿음이 순종의 반응을 낳지
못하는 이유는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다.
누가복음 7:36-50의 한 여인은 죄 사함과 구원을 기다리며 잠잠히 행동한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결과는 성공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이다.
15:9 바울은 사도로서 핵심적인 직무를 유능하게 감당했다. 동시에 교회에 대한 박해 때문에 자신을 사도들 중 가장 작은 자로 느꼈다. 9:1-12에서는 "내가 사도가 아니냐?"라고 자신의 권리를 변호했었음.
15:3 초기의 기독교 신조: ①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십자가). ②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부활). 이 내용들은 고린도전서보다 적어도 20년 전에 이미 말해진 내용이다.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바울의 스타일은 15:56 에서 처럼 죄를 단수형singular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 ①의 결론에 다다른 과정: 세례 요한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을 비교하는데서 시작되었다. 두 죽음의 유일한 차이는 부활이며 이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 대한 명백한 승리였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결론은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제자들의 고백은 "예수는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었으므로
①과 같은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형벌의 면제가 목적이 아니고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 회복에 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②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목격자들(복음서에는 부활의 주요 목격자인 여인들이 등장)이 있다는 것이다.
▣ 초기의 신조에서 강조점은 "내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들"에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아버지"(마태 6:9)에게 기도했다.
▣ 부활과 믿음의 타당성 (15:12-20) 일곱 개의 장면과 중앙의 클라이맥스(15:15)로 구성. 긍정적인 요소가 부정적인 요소를
감싸고Inclusion 있다. 1:17-2:2의 "십자가 찬송"과 대응을 이루는 "부활 찬송"이다.
고린도전서의 처음과 끝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대위법counterpoint: The Art of Fugue
by J. S. Bach
15:12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 일부는 부활을 부정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파와 믿음은 모두 헛되다. 우리들의 증언은 거짓말이 된다.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 죽은 사람들은 망할 것이고 산 사람들은 소망 없이 사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십자가의 목적이 우리가 받을 형벌의 면제였다면 꼭 부활이 없어도 되겠지만 구원(죄와
사망에 대한)이라면 메시아는 "잠자는 자들의첫 열매"(15:20)가 되셔야 했다.
그리스도가 살아 나셨으므로 우리도 이 첫 열매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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