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목요 성경 공부 242강 : 신구약 중간사 (4) – 에스라와 느헤미야

  • Writer: Admin
    Admin
  • 2 hours ago
  • 1 min read

▣ 다니엘,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공통점은 신구약 중간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는 점, 그리고 바벨론 포로였거나 포로의 후손으로 바사 제국의

관용 정책’의 수혜자들이라는 점이다.


◈ B.C. 586년, 남유다가 멸망한 이후,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돌아 온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당연히 사마리아는

성전의 재건에 반대했다.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이들의 강한 방해로 제 2 성전은 16년 동안 ‘희생 제단’만 있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B.C. 516년, 성전이 완공될 시기에 스룹바벨(1차 귀환자)의 이름은 성경에서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바사 제국이 그를 소환했을 것이다(□ 에스라 6:13-22).

이 시기에 ‘강 건너편 땅’의 총독으로 파견된 ‘닷드내’는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보내서

성전 건축을 진행하게 할지 묻는다. (□ 에스라 5:1-17)


▣ 에스라(2차 귀환자)

B.C. 458년경, ‘강 건너편 땅’으로 파견된 서기관으로서 페르시아 제국 내의 유대인들과

함께 돌아왔다. 종교적인 체계를 세우고 성전 관련 업무를 수행했으며, 율법을 보급하고

교육하는 일, 공동체의 결속과 신앙적인 회복에 힘썼다.


◈ 느헤미야(3차 귀환자)

B.C. 445년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파견되었다. 제 2 성전이 세워진지 칠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성벽이 없었다(□ 느헤미야 1:1-2:20). 이 때까지 귀환한 사람들은

사마리아의 관할을 받고 있었다. 자신도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를 통치했던 총독

산발랏’이 성전 재건 시도를 방해했다. 느헤미야는 유대 사회의 제도를 정비하고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에스라가 신앙적인 회복을 위해 힘썼듯이

느헤미야는 사회적인 회복을 꿈꿨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페르시아 태생의 포로 

2세대였다는 것이다. 2세대 중 상당수는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았다.

많은 레위인들 역시 귀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성경은 돌아온 사람들을

더 자세히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닐까? 


re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