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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성경 공부 246강 : 신구약 중간사 (8) –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


▣ "강 건너 편 땅"의 지배권을 두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전쟁이

수차례 벌어졌다.

B.C. 200년의 "파네이온 전투"(제 5차 시리아 전쟁)로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비교적 종교적 자율성을 허용했지만, 셀레우코스 왕조는

헬레니즘 문화와 종교를 강요했다.

B.C. 175년 안티오코스 4세가 즉위하면서 헬레니즘이 거칠게 유대 사회로 밀어닥쳤다.

이에 자극 받은 유대 사회는 ‘마카비 전쟁’을 일으키며 저항했다.      


B.C.301년에서 B.C.200년 사이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 시기에  유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유대인들의 율법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것을 요청한다.

구약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 Septuagint」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이집트에는 유대인 회당이 존재했다.

B.C.516년(제 2 성전이 세워진 해) 이후, 유대인들은 성전을 통해 율법으로 연결되었고,

회당을 중심으로 한 일상을 살아나갔다(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로마, 안디옥 등).


▣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는 모세 오경 낭독이 중심이었다.

성경이 말한 ‘율법과 선지자’에서 ‘율법’에 해당하는 구약 성경이다(□ 사도행전 13:13-43). 당시 공용어는 그리스어였기 때문에 회중들은 히브리어 율법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통역의 필요성이 커졌고 동시에 ‘회중의 언어’(그리스어: 그중에서도 시장에서 통용되던

코이네 그리스어)로 읽어달라는 요구가 생겨났다.

이미 느헤미야 시대부터 히브리어는 잊혀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회중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물이 「70인역」이다.

히브리인의 사상이 그리스인의 언어로 예배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대제사장이던 엘르아살에게 율법의 번역을 요청했다.

엘르아살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이집트로 잡혀간 유대인 포로의 석방을 요구했다.

열두 지파에서 6명씩, 총 72명의 율법학자가 이집트로 파견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서 번역 작업을 했고 하루에 한 번씩 번역한 내용을 서로 비교했다. 

본토의 유대인과 디아스포라 유대인 사이에 공통의 정체성이 생겼고 유대인들은 장소에

관계 없이 일정한 형태의 예배와 일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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