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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성경 공부 256강 : 신구약 중간사 (18) – 유대교 세 분파: 사두개파


◈ "사두개파"는 자신들의 이름을 제사장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의미로 ‘사독’에서 따왔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직후, 공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이 사도행전 22:30-23:10

나온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믿는

아주 현세적인 사람들로 나온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복 역시 ‘오직 이 땅의 번영으로 증명된다.’고 주장했다.

    

▣ 권력자가 대제사장을 임명하거나 아예 대제사장이 공석으로 방치되었던 기간에

사두개인들은 권력자(당시에는 하스몬 왕조)의 주변을 맴돌았다.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강제로 그들에게 할례를 행했던 *요한 힐카누스 때 발행한 동전에는 ‘대제사장 요한 힐카누스와 유대인의 원로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대인의 원로들이 바로 요한 힐카누스가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하는 것을

승인한 종교 엘리트 계층, 사두개파이다.

하스몬 가문은 사독 계열이 아닌 ‘여호야립’(역대상 9:10) 계열의 제사장 집안이었다.


◈ 이 때 바리새파는 사마리아 점령에는 동의했으나 대제사장의 겸직은 반대했다.

요한 힐카누스는 사두개파를 신임하고 바리새파는 쫓아냈다.

알렉산더 얀네우스 때 하스몬 왕조의 영토는 최대였으나 바리새파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얀네우스는 초막절에 제단의 물을 자신의 발에 붓고, 이에 항의하는 군중 6천 여명을 학살, 바리새파가 수리아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내전에서 승리한 얀네우스는 바리새파 지도자 800명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의 아내가 하스몬 왕조의 유일한 여왕, 살로메 알렉산드라다.

그녀는 바리새파를 재기용하며 평화를 꿈꿨으나 두 분파의 갈등은 이미 깊어져 있었다.


B.C. 63년, 로마의 유대 점령을 계기로 사두개파가 다시 권력의 중심에  다가섰다.

바리새파는 민중 속으로 들어가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

사두개파는 운명이나 예정을 믿지 않았으며 인간의 능력에 따라서 선하거나

악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에세네파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바리새파는 중도적 입장으로 운명과 능력을 모두 인정했다.

사두개파의 하나님은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토머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주장한 *이신론과 유사하다. "신은 우주를 창조했지만, 운행에는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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