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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성경 공부 248강 : 신구약 중간사 (10) – 저항: 마카비 전쟁 (1)


B.C. 175년에 안티오코스 4세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다니엘 8:23-25; 11:21-45에서 언급된 바로 그 왕이다.

이 때부터 헬레니즘의 종교, 문화, 언어가 유대 사회에 강요되었다.

유대 공동체는 어떤 대응을 했을까?


B.C. 200년B.C. 175년에 유대인들이 느꼈던 ‘헬레니즘화’의 차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초기 헬레니즘 정책은 유대인 공동체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안티오코스 3세는 예루살렘 성전 복구를 지원했으며 세금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뒤를 이은 안티오코스 4세는 강압적 헬레니즘화를 시도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문화와 종교를 강요하는 동시에 유대교의 핵심 관습들은 금지했다.

ㆍ할례 금지  ㆍ안식일 준수 금지  ㆍ성전에 제우스 제단 설치  ㆍ돼지고기 제물 강요


▣ 왜 셀레우코스 왕조는 유대인에 대한 헬레니즘화 정책을 강압적으로 바꿨을까?

B.C. 191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안티오코스 3세가 로마에게 패배한 뒤,

셀레우코스 왕조는 급격히 약화되었고 내부 혼란도 심해졌다.

안티오코스 3세는 그리스를 포기하고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만 가지게

되었다. 곧바로 B.C. 190년의 "마그네시아 전투"에서도 패하면서 소아시아 대부분을

상실했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로마에 지불해야 했다.

해군과 군사력 역시 제한되었으며 이로 인해 셀레우코스 왕조는 재정과 권위가 크게

흔들렸다.

로마에게 줄 배상금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들을 징수하려고 했고 이에 유대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 하스몬의 아들 맛다디아는 예루살렘 북서부 *모데인의 제사장이었다.

B.C. 168년, 이교도 제사를 강요하고 유대인에게 강제로 돼지고기를 먹이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관리들을 죽인 후, "누구든지 하나님과 율법에 대해 열심이 있는

자들은 나를 따르라"는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피신했다.

민수기 25:6-18의 일화가 연상된다.

맛다디아의 다섯 아들들(요하난, 시몬, 유다, 엘아자르, 요나단)을 중심으로

헬라 정규군과 유대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로마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헬라군은 코끼리 부대까지 동원했다.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 유다는 ‘망치’(아람어 ‘마카비’)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전쟁의 이름이 되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유대인은 독립을 맛보았고 ‘하스몬 왕조’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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