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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성경 공부 249강 : 신구약 중간사 (11) – 저항: 마카비 전쟁 (2)


▣ 제 2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진 B.C.516년 이후에 ‘대제사장’을 어느 집안에서 맡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독 계열의 오니아스 집안.

한편, B.C.200년부터  헬레니즘화가 강화되면서 예루살렘은 중요한 상업 도시가 되었다.

세금+무역권’을 어느 집안이 담당할 것인가? 토비아스(도비야) 가문이 유력했다.

도비야는 에스라ㆍ느헤미야 시대에 유대 공동체를 방해한 인물로 그의 후손들이

유대 공동체의 경제권을 장악했다. □ 느헤미야 4:1-6; 13:1-9


◈ 헬라 제국의 지배 세력이 바뀌는 동안에도 내부적으로는 두 집안의 경쟁이 치열했다.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는 친프톨레마이오스였고 토비아스 집안은 친셀레우코스였다. B.C.200년이 되자, 오니아스 3세의 동생 ‘야손’이 셀레우코스 왕조에 뇌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이 되었다. 예루살렘에 그리스식 극장, 경기장, *김나지움(훈련장)이 세워졌다.

헬라 제국은 예루살렘을 아테네나 스파르타같은 폴리스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 "은 300달란트 더" 토비아스 집안 역시 대제사장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론 계열의 ‘메넬라오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웠다. 안티오코스 4세도 원활한 세금 징수를

위해서 토비아스 집안을 지지했다.

대제사장 직분의 타락과 율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경건 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다. 하시딤!!

이들로부터 유대의 여러 종파가 분열했다.

돈과 권력이 대제사장을 결정하던 상황은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진다.

로마의 총독이나 분봉왕 헤롯의 가문이 당시 대제사장들에게는 섬겨야 할 ‘주인’이었다.


◈ 하시딤을 제외한 예루살렘의 귀족들은 회당에서의 율법교육보다 김나지움의

그리스식 교육을 선호했고 성전에서의 예배보다 올림픽 같은 경기에 열심이었다.

안티오코스 4세와 유대 지도자들은 대립하지 않았다!!

권력과 이득을 보장 받은 귀족들은 유대의 헬레니즘화에 앞장섰다.

예수님 시대에도 로마를 통해 권력과 이권을 쥐었다.

마카비 전쟁’(B.C.167-164년) 직후, 안티오코스 4세가 사망하자, 셀레우코스 왕조는

아론 계열의 ‘알키모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우며 중재를 시도했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반응이 둘로 갈렸다.

유다 마카비의 집안은 권력 유지를 위해 중재안을 수용했지만, 이것을 ‘변질’이라고

판단한 하시딤과 사독 계열 집안은 광야로 나갔다.

야심이 많았던 ‘요나단’이 알키모스를 죽였지만 사독 계열은 광야에서 돌아오지 않고

쿰란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에 요나단은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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