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성경 공부 251강 : 신구약 중간사 (13) – 사마리아인 이야기 (1)
- gosimon0422a
- 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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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왕조의 멸망(B.C.586년)부터 하스몬 왕조의 설립(B.C.142년)까지의 역사는
남유다만을 다루고 있고 북이스라엘은 제외되어 있다.
사라진 북이스라엘의 중심에 ‘사마리아인’이 있었다.
◈ "최초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앗수르는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 성전을 약탈했다. 당시에 이미 바알, 아세라 등의 우상 신상들이
사마리아 성전 안에 있었다.
요셉 지파를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때부터
예루살렘과 구별된 자신들만의 예배 장소를 원했다.
처음에는 벧엘에 ‘금송아지’를 두고 산당과 제사장을 세웠고,
*오므리 왕조(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까지)가 시돈과 혼인 동맹을 맺은 후에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고 거기에 성전을 세웠다.
▣ 성경에 등장하는 앗수르의 왕들
① 불Pul(디글랏 빌레셀): 남유다의 아하스(히스기야의 아버지)와 북이스라엘의
호세아(마지막 왕) 모두에게 조공을 받았다. 열왕기하 15:19,29
② 살만에셀: 사마리아를 포위, 3년만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 열왕기하 18:9-12
③ 사르곤: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먼 곳으로 추방하고, 바벨론과 하맛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북이스라엘에 정착시켰다. ‘혼합주의 정책’을 시행했으며 이로 인해
"사마리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 이사야 20:1; 열왕기하 17:24-41
④ 산헤립: 남유다의 히스기야에게 조공을 받았다. 예루살렘을 침공했으나 실패했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 아들들의 반역에 희생되었다. 열왕기하 19:36-37
⑤ 에살핫돈: 반역에 가담하지 않은 유일한 산헤립의 아들로, 애굽까지 정복하고
앗수르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했다. 반란을 방지하고자 혼합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이 영향으로 남유다가 멸망(B.C.586년)할 즈음,
이미 사마리아는 ‘혼합된’ 채로 백 년 이상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었다.
◈ "두 번째 제국" 바벨론은 "분리 정책"을 폈다.
엘리트들은 바벨론으로 데려가고 하층민들은 본토에 남겨서 간접적으로 통치했다.
"세 번째 제국" 바사는 유대를 ‘사마리아 속주’에 편입시켰다. 돌아온 바벨론 포로의
후손들이 ‘제 2성전’을 세우려고 했을 때, 자신들의 영향력이 사라질 것을 염려한
사마리아인들이 심하게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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