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성경 공부 253강 : 신구약 중간사 (15) – 유대교 세 분파의 출발
- gosimon0422a
- 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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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네파, 사두개파, 바리새파"의 공통 분모는 ‘제 2성전과 율법’이었다.
제 2성전이 지어진 이후에야 ‘유대교’라는 이름이 등장했고, 마카비 전쟁 직후
대제사장 직분이 변질되자 이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분파들이 등장했다.
정통성의 회복을 요구한 ‘하시딤’들이 ‘의의 교사’라는 이름의 사독 계열 제사장을 중심으로 광야로 향했고 "에세네파"를 형성했다.
반면, 하스몬 왕조 권력의 주변에 남은 제사장들과 종교 엘리트들은
"사두개파" 를 형성했다. 분파의 이름에서 정통성을 주장하려는 그들의 의도가 확인된다.
신약 시대에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이었으며 정치적인 영향력을 추구했다.
◈ ‘불의함으로부터 정결하게 구별됨’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바리새파"는
처음부터 민중들의 지지를 목표로 삼았다.
안티오코스 4세가 죽은 뒤,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위를 놓고 데메트리우스(데메드리오)와
알렉산더 발라스가 대결했을 때, 데메트리우스와 손을 잡고 아론 계열인 알키모스를
대제사장으로 세우는데 동의한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처음에는 ‘하시딤’이었으나 곧 바리새파로 발전했다.
에세네파를 형성한 하시딤을 ‘남은 하시딤’이라고 부르고, 바리새파가 된 하시딤은
‘그 하시딤’으로 구분해서 부른다.
▣ 일반 백성들에게 사독 계열이냐, 아론 계열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바리새파의 판단은 빗나갔다! 민심을 파악한 하스몬 가문의 요나단이 알키모스를 죽이고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이 때 요나단 편에 섰던 제사장 그룹이 바로 "사두개파"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출발부터 하나 되기가 어려웠다.
유일하게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서만 두 분파는 의견을 같이했다. (□마 16:1; 요 11:47~53) 민중의 지지를 원했던 바리새파는 민중에게 자신들의 구별됨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러한 경향은 ‘외식’hypocrisy으로 변질되었다. (□누가복음 12:1)
◈ 광야로 간 에세네파는 자신들을 ‘그 이스라엘’이라고 불렀다.
처음 이스라엘이 받은 시내산 언약을 계승한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미래에 종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다니엘서를 근거로 주장했다. (□다니엘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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