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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공부 자료방


목요 성경 공부 251강 : 신구약 중간사 (13) – 사마리아인 이야기 (1)
▣ 다윗 왕조의 멸망( B.C.586년 )부터 하스몬 왕조의 설립( B.C.142년 )까지의 역사는 남유다만을 다루고 있고 북이스라엘은 제외되어 있다. 사라진 북이스라엘의 중심에 ‘ 사마리아인 ’이 있었다. ◈ " 최초의 제국 "이라고 할 수 있는 앗수르는 B.C.722년 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사마리아 성전을 약탈했다. 당시에 이미 바알, 아세라 등의 우상 신상들이 사마리아 성전 안에 있었다. 요셉 지파를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 때부터 예루살렘과 구별된 자신들만의 예배 장소를 원했다. 처음에는 벧엘에 ‘ 금송아지 ’를 두고 산당과 제사장을 세웠고, *오므리 왕조(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요람까지)가 시돈과 혼인 동맹을 맺은 후에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고 거기에 성전을 세웠다. ▣ 성경에 등장하는 앗수르의 왕들 ① 불Pul(디글랏 빌레셀): 남유다의 아하스(히스기야의 아버지)와 북이스라엘의 호


목요 성경 공부 250강 : 신구약 중간사 (12) – 독립: 하스몬 왕조
▣ B.C.142년 맛다디아의 둘째 아들 ‘ 시몬 ’이 독립을 쟁취했다.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444년이 흐른 뒤였다. 시몬은 스스로 왕과 제사장 을 겸했다. 더이상 놀랍지가 않다!! 마카비 전쟁 초기에는 하스몬 가문에 협조하던 ‘ 하시딤 ’(경건한 유대인들)과 사독 계열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완전한 독립에 앞서 B.C.164년 에는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고 ‘ 수전절 ’(히. 하누카)을 지켰다. □ 요한복음 10:22 하스몬 왕조는 B.C.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80년간 이어졌다. ◈ 「이월 이십삼일에 유다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 소리도 드높게 비파와 꽹가리와 거문고 소리에 맞춰 찬미와 노래를 부르면서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민족의 큰 적이 참패를 당하고 이스라엘 땅 밖으로 쫓겨간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시몬이 제사장직의 정통성을 무너뜨렸지만, 독립을 경험하게 된 유


목요 성경 공부 249강 : 신구약 중간사 (11) – 저항: 마카비 전쟁 (2)
▣ 제 2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진 B.C.516년 이후에 ‘ 대제사장 ’을 어느 집안에서 맡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독 계열의 오니아스 집안. 한편, B.C.200년 부터 헬레니즘화가 강화되면서 예루살렘은 중요한 상업 도시가 되었다. ‘ 세금+무역권 ’을 어느 집안이 담당할 것인가? 토비아스(도비야) 가문이 유력했다. 도비야는 에스라ㆍ느헤미야 시대에 유대 공동체를 방해한 인물로 그의 후손들이 유대 공동체의 경제권을 장악했다. □ 느헤미야 4:1-6; 13:1-9 ◈ 헬라 제국의 지배 세력이 바뀌는 동안에도 내부적으로는 두 집안의 경쟁이 치열했다. 대제사장 오니아스 3세는 친프톨레마이오스였고 토비아스 집안은 친셀레우코스였다. B.C.200년 이 되자, 오니아스 3세의 동생 ‘ 야손 ’이 셀레우코스 왕조에 뇌물을 바치고 대제사장이 되었다. 예루살렘에 그리스식 극장, 경기장, *김나지움(훈련장)이 세워졌다. 헬라 제국은 예루살렘을 아테네나


목요 성경 공부 248강 : 신구약 중간사 (10) – 저항: 마카비 전쟁 (1)
▣ B.C. 175년 에 안티오코스 4세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 다니엘 8:23-25; 11:21-45 에서 언급된 바로 그 왕이다. 이 때부터 헬레니즘의 종교, 문화, 언어가 유대 사회에 강요되었다. 유대 공동체는 어떤 대응을 했을까? ◈ B.C. 200년 과 B.C. 175년 에 유대인들이 느꼈던 ‘ 헬레니즘화 ’의 차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초기 헬레니즘 정책은 유대인 공동체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안티오코스 3세는 예루살렘 성전 복구를 지원했으며 세금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뒤를 이은 안티오코스 4세는 강압적 헬레니즘화를 시도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문화와 종교를 강요하는 동시에 유대교의 핵심 관습들은 금지했다. ㆍ할례 금지 ㆍ안식일 준수 금지 ㆍ성전에 제우스 제단 설치 ㆍ돼지고기 제물 강요 ▣ 왜 셀레우코스 왕조는 유대인에 대한 헬레니즘화 정책을 강압적으로 바꿨을까? B.C. 191년 , " 테르모필레


목요 성경 공부 247강 : 신구약 중간사 (9) – 때가 차매
▣ 「70인역」 성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했다. ① 신구약 중간사에서 파편처럼 존재하던 성경들을 *정경canon으로 모아야 했고 ② 모아진 성경을 번역할 새로운 언어(그리스어)가 제국의 공용어로 자리잡아야 했고 ③ 대중들이 성전과 회당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일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바울이 기독교를 전파하는 과정을 보면, 로마인들은 유대인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몰랐지만 헬라 제국의 공용어인 헬라어에는 익숙했다. 복음 전파를 위한 환경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가고 계셨다. 따라서 암흑기가 아니다! 회당(쉬나고게)은 바울의 복음 전파에 중요한 발판이 된다(□ 사도행전 13:13-14; 18:7-11 ). ◈ 「70인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번역의 예들 -" 율법 "(히브리어로 토라)을 ‘ 다섯 두루마리 ’라는 뜻을 가진 ‘ Pentateuch ’로 번역했고 우리는 이것을 ‘ 모세오경 ’이라고 부른다.


목요 성경 공부 246강 : 신구약 중간사 (8) –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
▣ " 강 건너 편 땅 "의 지배권을 두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의 전쟁이 수차례 벌어졌다. B.C. 200년 의 " 파네이온 전투 "(제 5차 시리아 전쟁)로 유대인들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비교적 종교적 자율성을 허용했지만, 셀레우코스 왕조는 헬레니즘 문화와 종교를 강요했다. B.C. 175년 안티오코스 4세가 즉위하면서 헬레니즘이 거칠게 유대 사회로 밀어닥쳤다. 이에 자극 받은 유대 사회는 ‘ 마카비 전쟁 ’을 일으키며 저항했다. ◈ B.C.301년 에서 B.C.200년 사이에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 시기에 유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유대인들의 율법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것을 요청한다. 구약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 Septuagint」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이집트에는 유대인 회당이 존재했다. B.C.516년 (


목요 성경 공부 245강 : 신구약 중간사 (7) – 알렉산더가 꿈꾼 나라
▣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제국들(연대 순) 바벨론( B.C.586년 )▶▷ 페르시아(바사: B.C.539년 )▶▷헬라( B.C.333년 ) [느부갓네살] [고레스 대왕] [알렉산더 대왕]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B.C.301년 )▶▷셀레우코스 왕조( B.C.200년 ) [이집트, 팔레스타인 지배]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지배] ◈ 지배자들이 계속 바뀌고 있었던 내내 제 2 성전이 ‘ 종교 ’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알렉산더에 의한 ‘ 헬레니즘 ’이 밀려들었다. 헬레니즘은 문명, 사상, 언어를 통해 제국 안의 모든 사람들을 ‘ 하나의 시민 ’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헬라 문명(신화)은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던 유대인들의 종교와, 헬라 사상(철학)은 모세 오경을 바탕으로 하는 유대인들의 가치관과, 언어(헬라어)는 유대인의 히브리어와


목요 성경 공부 244강 : 신구약 중간사 (6) – 한 능력 있는 왕
▣ " 느부갓네살의 꿈 "(□ 다니엘 2:1-46 )을 통해 다니엘은 암흑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B.C. 603년 의 일이다. 왕이 꾼 꿈은 ‘ 순금 머리 ’(바벨론)에서 시작한 제국 시대는 은(페르시아), 놋(헬라 제국), 쇠(네 개로 분열된 헬라 제국?), 쇠와 진흙(로마 제국?)을 거쳐 ‘ 손대지 아니한 돌 ’에 의해 끝이 나고 그 돌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 에스겔 역시 "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 "(□ 에스겔 37:1-14 )을 보았다. 비록 유다는 멸망하고 에스겔 자신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구약 역사 중 가장 어두운 시기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 말씀하고 ’ 계셨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 큰 군대 ’처럼 자신의 지휘관 앞에 일어나 서게 된다. ▣ " 동서양의 충돌 "은 언제 처음 벌어졌을까?


목요 성경 공부 243강 : 신구약 중간사 (5) – 바사 제국 안의 유대인들
▣ ‘ 강 건너편 땅 ’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아스돗, 암몬,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졌다(□ 느헤미야 13:23-31 ). 신앙과 문화, 언어에서 ‘ 혼합 ’이 발생했다.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느헤미야는 극단적인 정화 운동을 전개했다. 예배에 방해 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었다. ◈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 암몬과 모압이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 ’는 말씀을 선포했다(□ 신명기 23:3-6 ).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 ‘ 섞인 무리 ’를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분리했다(□ 에스라 10:1-44 ). 이 일로 인해 공동체는 오히려 주변 민족들 사이에서 고립되고 단절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결정에 때로는 인간적인 아픔이 동반되기도 한다. ▣ 바사 제국 안에는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 디아스포라 ’ 유대인들도 있었다. 그


목요 성경 공부 242강 : 신구약 중간사 (4) – 에스라와 느헤미야
▣ 다니엘,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의 공통점은 신구약 중간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는 점, 그리고 바벨론 포로였거나 포로의 후손으로 바사 제국의 ‘ 관용 정책 ’의 수혜자들이라는 점이다. ◈ B.C. 586년 , 남유다가 멸망한 이후,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돌아 온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당연히 사마리아는 성전의 재건에 반대했다.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이들의 강한 방해로 제 2 성전은 16년 동안 ‘ 희생 제단 ’만 있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B.C. 516년 , 성전이 완공될 시기에 스룹바벨(1차 귀환자)의 이름은 성경에서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바사 제국이 그를 소환했을 것이다(□ 에스라 6:13-22 ). 이 시기에 ‘ 강 건너편 땅 ’의 총독으로 파견된 ‘ 닷드내 ’는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보내서 성전 건축을 진행하게 할지 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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